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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영화

나는 왜 무기력을 되풀이하는가 - 에리히프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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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년까지는 내 삶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 "일과 직장"이었다. 직장에서 인정받고, 일 잘해서 돈 잘벌고, 더 좋은 회사로 옮기고

이런 것들이 가장 내게 1순위였다. 야근과 스트레스를 견디기 위해 운동을 2년동안 했고, 직장에서 여자로서 불이익 받고 싶지 않아 결혼을 그렇게 오래 원하던 남자친구의 진심도 받아주지 못했다. 공격적이고 전투적이고 스스로를 쪼는 생활의 연속이었다.


그러다 아마 제작년쯤부터 서서히 그랬던 것 같고,

본격적으로는 작년부터 다른 생각이 들기시작했는데,

이러한 패턴으로, 지금의 삶의 목표로 10년, 20년, 30년 살아갔을 때 내 모습이 내가 원하는 게 맞나? 라는 생각이었다.

물론 임원의 삶도 경험해보고 싶었다.

그런데 내가 그자리를 원하는 데에 자리잡은 가치는 돈, 명예, 권력 이런 것들인데

이게 내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인지에 대해서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그래서 여러 강연들도 다니고 나를 찾기 위해 고민하고 끄적이고 대화하는 시간들을 가져보니

난 생각보다 소소한 것들에서 더 큰 풍족을 느끼는 사람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맛있는 것을 만들어서 먹고, 먹이고, 행복하고 슬픈 이야기를 나누고, 이런 시간들이 제일 행복하며

사랑받고 사랑하는 삶과 명예로운 삶 중 선택을 하라면 후자를 선택할 자신이 없었다.

나는 여리고 따뜻함을 갈망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최근에 다시 한번 깨닫게 됐다.

20대에 나를 알던 사람들은 한결같이 말한다. 넌 참 밝고 주변에서 제일 유쾌하고 웃긴 아이였다고.

지금은 날 그렇게 평가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 웃긴 것을 좋아하고 웃음 많고 한 모습일 때 난 제일 편하다.

물론 일로 인정받고 누구보다 더 성취하는 것 역시 통쾌하다. 하지만 그렇게 누구를 짓밟고 이기고 하는 시간은 충만한 행복을 주지는 못한다.


이러한 고민의 과정에서 접하게 된 책이 

에리히 프롬의 "나는 왜 무기력을 되풀이하는가?"이다. 

작년 말부터 힘이 빠지고 가라앉는 기분때문에 고민을 해보니 "무기력"이라는 단어가 떠올랐고 이와 관련해 많은 정보를 찾아봤다.


에리히프롬은 말한다.

피곤한 사람, 절망에 빠진 사람, 염세주의자는 자유에 도달할 수 없다. 피곤할수록, 절망에 젖어 있을수록, 염세적일수록 얻을 수 있는 자유는 줄어든다. '열정적인 사람'만이 자유로울 수 있다. 심리학적으로, 퇴보에 빠지지 않고 전진하고 진보하려 노력하는 사람만이 자유로울 수 있다. 독립과 동시에 주변 사람들에 대한 사랑을 포함하는 진보를 추구하는 사람만이 자유로울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은 자각에 이르는 만큼만, 현실을 인식하는 만큼만 자유로워진다. ...

우리는 자신을 이해하고 사랑하고 인식할 수 있을 때에만 타인을 인식하고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다. 하지만 의식적 헌신이 곧 자신의 사적 공간을 포기한다거나 타인의 사적 공간을 침해한다는 뜻은 아니다. 사랑은 인식이지만, 또 인식이기 때문에 타인에 대한 존중이기도 하다. 우리가 자신에게 투명하다면 타인의 불투명성은 인간의 가능성 안에서 투명해질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적어도 순간이나마 자신의 자발성을 경험하고 동시에 그 순간을 진정한 행복으로 느낀다. 어떤 것으로부터 해방인 소극적 자유만 있다면 인간은 고립된 존재가 되고 만다. 불신에 가득 차서, 연약하고 항상 위태로운 자아를 가진 채 세상과 멀리 떨어진 존재가 된다. 자발적 활동은 자아의 온전함을 희생하지 않고도 고독의 공포를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자아의 자발적 실현을 통해 인간은 새롭게 세상-인간, 자연, 자기 자신-과 하나가 되기 때문이다. ... 모든 자발적 활동에서 개인은 세계를 자기 안으로 받아들인다. 그 과정에서 개인의 자아는 온전해지고 더 강해지며 더 탄탄해진다. 자아는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만큼 강하기 때문이다. 자발적으로 행동하지 못하고 진정한 느낌과 생각을 표현하지 못하는 무능력, 그로 인해 타인과 자신에게 가짜 자아를 내보일 수밖에 없는 것이 열등감과 무력감의 뿌리이다. 의식하건 안하건 자기 자신이 아닌 것보다 더 부끄러운 일은 없으며, 진짜 자기 것을 생각하고 느끼고 말하는 것보다 더 큰 자부심과 행복을 주는 것도 없다. ... 현대인은 자신이 추구하는 것이 정말로 스스로 원하는 것인지를 고민할 시간을 내지 않는다. ... 현대인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잘 알고 있다는 착각 속에 살지만 실제로는 타인의 관점에서 볼 때 그가 원하는 게 마땅한 것만 원한다. ... 개인의 자아를 긍정한 데카르트와 달리 그의 대답(루이지 피란델로)은 자아의 부정이다. 내게는 정체성이 없다. 타인이 나에게 기대하는 것의 거울상을 빼면 자아란 없다. 나는 '네가 원하는 나'일 뿐이다. 



내가 무기력을 벗어날 수 있는 해법의 실마리를 본 것 같다.


1. 나에 대해 알 수 있도록 열정을 갖고 자발적인 것들을 실행할 것

 (1,2사분기까지 계획: 영어 공부 위한 통역학원 수강- 외국계 소비재 마케팅 위해, 상해/스페인 여행-새로운 경험으로 시야 넓히기 위해, 운동-자발적으로 내 건강과   체력, 목표 몸매 유지를 위해)

2. 타인이 요구하거나 아는 나 말고, 나 자신을 알기

 (독서, 일기, 글쓰기를 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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